난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호러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나는 한 때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쏘우’ 시리즈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등 공포영화 매니아였고, 공포영화 현장에서 스텝으로 알바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리처드 매시슨을 몰랐다. 공포영화의 법칙이나 클리셰를 공부하면서도 스티븐 킹은 들어봤어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아,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포장르의 플롯을 총망라해 둔 느낌의 이 단편소설집은 반드시 나의 작법서들 한 가운데 꽂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내용의 연속이다. SF, 스릴러, 추리,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듯 보이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있다. 그 공포는 귀신이나 유령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리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진흙탕 같이 어둡고 더러운 욕망을 자극한다.
아무렇지 않은 맑은 날 평화로운 도로 옆 카페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라든가,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꼰대 스타일의 사장이 적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겠노라 고집스럽게 승리를 차지했지만 알고보니 죽은 지 7개월이 넘었다거나, 남자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서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다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라는 식이다.
읽어보면 우리가 언젠가 어느 영화에서 접해 보았을 법한 느낌이다. 영화의 프롤로그 같기도 하고, 여운을 남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하다.
첫 작품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를 읽고는 프롤로그인 줄 알았다. 소름끼치는 장면들,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 전조가 짙게 깔려있다. 정말이지 다음 장이 기대됐고 내가 상상하는 이상의 무언가가 등장하리라 기대감이 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도 그 뒤를 이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싶은 훌륭한 도입부라고 느껴졌다.
‘피의 아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뱀파이어 영화가 된다. 진짜를 만난 소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뒤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이 책은 리처드 매시슨의 단편작품 모음집이다. 이 책의 끝 부분엔 리처드 매시슨의 연보와 옮긴이의 말, 해제가 실려 있다. 이 한권으로 그의 단편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다. 2013년 운명하였는데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장편 작품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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