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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오정희의 기담

by 딸기찡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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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늦은 여름밤, 유난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종종 있다. 옆에 자던 할머니를 깨우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듣다가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허황되지만 신비로운 도사나 신선, 변신한 구렁이나 여우,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나 귀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책 이름은 저자의 이름을 붙여 '오정희의 기담'이라 지었다.
교훈을 준다거나 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렇다더라 하듯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흘리듯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잔혹동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시기심에 목숨을 빼앗는 이야기를 읽을때면 그렇다. 우리가 세계명작동화라고 읽는 이야기도 초반엔 투박하고 잔혹한 옛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듯 이 책의 이야기들은 가공되지 않은, 잔혹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나 어두운 본능을 살짝살짝 내보이며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한다.

이야기는 독자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떠한 소감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읽는 사람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야기 들이다. 누군가가 안타까웠지만 그를 어리석다 말하기는 좀 그렇다. 처음엔 불쌍했지만 나중에 잘 되기도 한다. 반면 처음엔 좋았는데 갈수록 나빠지기도 한다. 그에 따라 각자 느끼는 교훈은 다를 것 같다. 예를 들면 앵두 이야기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내가 느끼기에 앵두라기 보다는 그 아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고씨네에서는 연락두절 된 채 돌아오지 않는 서방을 기다리며 온갖 고생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잠시 재혼했었다는 이유로 금의환향한 서방에게 버려진 사연이 가슴아팠다. 그시대 배경이라면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과거시험 보기 전 홀로 집 안팍을 살핀 여자의 노고도 헤아려야 하는게 인간적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같이 살진 못해도 적어도 죽게 내버려둬선 안되었던게 아닌가 안타깝기도 했다.

무심한듯 곁들여진 수채화 일러스트도 마음에 쏙 든다. 거품이 쏙 빠진 담백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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