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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벌거벗은 겨울나무

by 딸기찡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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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라고 하면 앙상한 가지밖에 남지 않은 초라한 나무가 생각난다. 그런데 벌거벗기까지 했다니...

살을 애는 듯한 추위가 벌거벗은 나무의 속살을 뚫고 모든 걸 얼려버릴 듯 하지 않은가.

책을 받아보고 느낀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헐벗은 데다 세파에 시달리기까지 한 고단한 삶...

책의 표지에 일제치하, 625 피난민의 삶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는 쉽지 않은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회고록으로 남기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나이 80넘은 노인이 할머니나 엄마가 아닌 인간 '김애라'의 삶을 책으로 남기고자 집필한 책이다.

이민자, 목사, 박사 등 자신을 포장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쓴 책이다.

 

1938년 강계에서 태어난 저자는 의사집안의 딸로서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625사변때 월남하여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시집가서 신학대학을 졸업해 목사가 되고 공부를 더 한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 정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렇게 들으면 부유한 집안의 화려한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 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불행한 엄마의 삶을 보며 자랐고, 625 피난길에 큰 병을 얻어 담배를 팔기도 했고, 친구의 배신으로 사진결혼 당해 비참한 미국생활을 시작, 죽을수도 없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외국인노동자처럼 일하며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가다가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는 자신의 괴로운 현 상황만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보며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미국행을 결심하고 재기를 위해 다시 한번 일어선다.

 

저자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배움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시 배움을 시작했을때 늘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눈물흘리는 저자의 마음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과 맞짱뜰 기세로 신학대학을 갔지만 하나님은 플로리다로 휴가갔다는 교수의 말에 실망하는 저자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다시 신앙의 의미를 깨우치는 부분은 감동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이야기지만 저자의 마음속의 변화와 용솟음치는 용기와 투지에 격려를 보내며 읽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옛날엔 가부장제 아래에서 할말도 못하고 숨죽여 사는 여자가 많았다. 여성의 배움에도 인색했다. 여성목사인 저자는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인종차별받고, 여성 목사를 낯설어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나마 저자가 미국에서 살았으니 그렇게라도 뜻을 이루며 살았지, 한국이었다면 그렇게 뜻을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과거를 집필하여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용기를 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포기한 채 살다보니 우리아이 기억속에 내가 단순히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만 남으면 억울할 것 같다.

단편적인 나의 조각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나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글로 남겨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과거를 다시 생각하고 그 마음을 성숙해진 노년에 들여다 본다면 나도 저자처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생생하게 담긴 생의 기록이다. 읽으며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어린 7남매를 데리고 전쟁 피난길에 올랐고 그 와중에 죽은 자식도 있었다고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병에 걸린 자식을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살려내기도 했다는 그 당시 이야기는 처참하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의 가슴아픈 과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너무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술술 읽히는 문체로 인해서 잠시 영화를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에 빠지게 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단숨에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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